목차
- 퇴근길, 운전대를 잡고 나도 모르게 악을 질렀던 그날 저녁 (서론)
- 분노를 참아내겠다고 가슴을 쥐어짜다 얻은 명치의 통증 (본문)
- 노트 한 권을 펴고 내 안의 뜨거운 불덩이를 있는 그대로 적어 내린 시간 (본문)
- 타인이 아닌 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되찾은 조용한 숨통 (결론)
1. 퇴근길, 운전대를 잡고 나도 모르게 악을 질렀던 그날 저녁
지난 달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화요일 퇴근길이었습니다. 꽉 막힌 올림픽대로 한가운데에서 갑자기 옆 차선 차가 신호도 없이 앞으로 끼어들더군요. 평소 같으면 그냥 브레이크를 살짝 밟고 넘어갔을 텐데, 그날은 순간적으로 머릿속이 하얗게 질리면서 운전대를 쾅 치고 차 안이 떠나갈 듯 악을 쓰고 있는 제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심장은 미친 듯이 뛰고 손이 덜덜 떨리면서 가슴 안쪽에서 묵직한 돌덩이가 콱 막힌 느낌이 들었습니다. 집에 돌아와 소파에 앉아서도 그 억울함과 화가 가라앉지 않아 밤새 잠을 설치고 나니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입안이 바짝 말라있더군요. 10년 동안 건강 글을 쓰면서 남들에게는 마음을 가다듬으라느니 스트레스를 관리하라느니 조언해 왔는데, 정작 제 안에서 타오르는 화병과 울화통을 다스리는 감정 인지법을 몰라 몸 전체가 붉게 달아오르고 있었던 겁니다.
2. 분노를 참아내겠다고 가슴을 쥐어짜다 얻은 명치의 통증
처음에는 그저 꾹 참는 게 어른스러운 대처라고 생각했습니다. 회사에서 억울한 말을 듣거나 집에서 속상한 일이 생겨도 "내가 참고 말지" 하며 입을 꾹 다물었지요. 그런데 화를 밖으로 표출하지 않고 안으로 꾹꾹 눌러 담으니, 그 불덩이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제 명치끝에 그대로 뭉쳐버렸습니다.
급기야 며칠 뒤부터는 밥을 조금만 먹어도 체한 듯 답답하고 윗배가 딱딱하게 굳어 누르면 통증이 생기는 부작용을 겪었습니다. 남에게 해를 입히지 않으려고 선택한 '무조건적인 참음'이 도리어 내 위장과 신경계를 갉아먹는 독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뼈아픈 실수의 순간이었습니다.
[직접 촬영 사진 삽입이 어려워 AI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관련 심리학 도서와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쪽 자료들을 찾아보았습니다. 감정을 차단하거나 무작정 참아내는 행위는 뇌의 변연계를 과각성시켜 교감신경을 지속적으로 자극한다는 구절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분노라는 에너지는 억누르는 대상이 아니라, 일단 내 안에서 일어났음을 객관적으로 인정하고 시각적으로 꺼내어 보여주어야 비로소 힘을 잃는다는 생리학적 원리를 알게 되었습니다.
3. 노트 한 권을 펴고 내 안의 뜨거운 불덩이를 있는 그대로 적어 내린 시간
그날 밤부터 식탁 구석에 줄이 그어진 노트를 하나 가져다 놓았습니다. 그리고 가슴속에서 열감이 울컥 올라올 때마다 내 감정을 타인에게 쏟아내거나 혼자 삭이는 대신, 그 노트를 펼쳐 들었습니다.
가장 먼저 한 작업은 정돈된 글을 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상황에서 내가 느낀 진짜 감정이 무엇인지'를 거친 단어로 삐뚤빼뚤 적어 내려갔습니다. "OO씨가 내 의견을 무시해서 내 자존심이 짓밟힌 기분이 들었다", "차가 끼어들었을 때 내가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화가 났다"처럼 3인자의 시선에서 내 상태를 관찰하듯 써 내려갔지요.

처음 사흘 동안은 글을 쓰는 동안에도 손이 떨리고 다시 화가 치밀어 올라 노트 페이지를 찢어버리고 싶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감정을 문장으로 적어놓고 가만히 그 글자를 바라보고 있으면, 뜨겁게 날뛰던 분노가 노트 종이 위로 옮겨 가면서 내 가슴속 온도표가 조금씩 내려가는 기분을 받았습니다. 타인을 향해 폭발하려던 에너지가 글자라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스스로 소화되는 과정이었습니다.
4. 타인이 아닌 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되찾은 조용한 숨통
한 달 동안 이 일지 쓰기를 일상의 작은 고해성사처럼 이어왔습니다. 남들에게 착한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감정을 억지로 덮어두지 않고, 그렇다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내 억울함을 감정적으로 쏟아부어 상처를 주지도 않는 나만의 균형점을 찾은 셈입니다.
덕분에 요즘은 갑작스러운 자극이 찾아와도 바로 폭발하기보다 '아, 내 안에서 또 불이 붙으려고 하는구나' 하고 한 발짝 떨어져 내 감정을 바라보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명치끝을 짓누르던 답답한 묵직함도 이전에 비해 한결 부드럽게 가라앉았고요. 내 안의 거친 감정을 무조건 배척하기보다 그 또한 내 일부임을 인정하고 다정하게 적어 내려가는 시간이, 지친 일상을 다시 단정하게 가꾸어 주는 고마운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오늘 저녁 거실 식탁 위 작은 노트 한 권을 올려두고, 내 마음속에서 출렁이던 이야기들을 조용히 써 내려가 보는 것도 작은 시작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