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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세탁소 비닐을 벗기자마자 안방 가득 퍼지던 큼큼한 기름 냄새
  2. 냄새 좀 빼겠다고 옷장 문만 열어두었다가 겪은 소소한 거실의 비극
  3. 베란다 창가, 세탁소 비닐을 찢어내고 옷에게 바람을 건넨 사흘
  4. 코끝을 찌르던 석유취가 빠져나가고 비로소 되찾은 쾌적한 옷장

1. 세탁소 비닐을 벗기자마자 안방 가득 퍼지던 큼큼한 기름 냄새

지난주 계절이 바뀌면서 맡겨두었던 아끼는 겨울 코트와 정장 상의 몇 벌을 세탁소에서 찾아왔습니다. 깨끗하게 다려진 옷을 보니 마음까지 펴지는 것 같아 기분 좋게 얇은 비닐 커버를 훌러덩 벗겼지요. 그런데 그 순간, 코끝을 확 찌르는 강렬한 기름 냄새 때문에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리며 뒤로 물러섰습니다.
10년 동안 건강과 생활 환경에 대한 글을 써오면서 실내 공기 질이 얼마나 중요한지 숱하게 이야기해 왔는데, 정작 제 집 안방을 순식간에 매캐한 석유 냄새로 채워버린 겁니다. 그저 세탁소 특유의 냄새려니 하고 무심코 넘어가기에는 눈까지 약간 시릿하고 머리가지 지끈거렸습니다. 깔끔하게 입으려던 옷이 도리어 안방 공기를 해치는 범인이 되어버린 순간이었습니다.

2. 냄새 좀 빼겠다고 옷장 문만 열어두었다가 겪은 소소한 거실의 비극

처음에는 그저 비닐만 벗겨낸 채 옷장 문을 넓게 열어두고 거실 창문만 살짝 열어두었습니다. 며칠 지나면 알아서 냄새가 날아가겠거니 생각했던 거지요. 그런데 이게 제 아주 멍청한 첫 번째 실수였습니다.
이틀 뒤 옷장 문을 열었을 때, 코트에서 빠져나가지 못한 냄새가 옆에 걸려있던 다른 봄 옷들까지 푹 뱀에 들어있더군요. 게다가 밀폐된 방 안에서 드라이클리닝 용제가 증발하면서 옷장 나무 서랍재와 안방 가구에 잔류하는 휘발성 유기화합물(VOCs) 수치를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AI로 만든 이미지입니다]

세탁소 비닐을 벗겨낸 코트가 안방 옷장 문에 걸려 있고, 그 주변으로 환기를 위해 열어둔 방문의 모습


이 헛걸음을 겪고 나서 환경 보건 학회 쪽 자료나 화학 물질 관련 글들을 다시 찾아보았습니다. 세탁소에서 주로 사용하는 드라이클리닝 세제는 석유계 용제인데, 조리나 세탁 후 옷에 남아있는 이 성분들은 단순히 향으로 가려지는 게 아니라 공기 흐름을 통해 기화시켜 날려 보내야 한다는 당연한 원리를 재확인했습니다. 밀폐된 실내에서 옷장 문만 열어두는 것은 기름 증기를 집 안에 가두는 꼴이었습니다.

3. 베란다 창가, 세탁소 비닐을 찢어내고 옷에게 바람을 건넨 사흘

그길로 냄새가 배어있는 옷들을 모두 끌어내 베란다 건조대로 옮겼습니다. 옷을 덮고 있던 비닐 커버는 과감하게 벗겨서 버렸습니다. 비닐을 씌운 채 그대로 걸어두면 내부 습기와 유기화합물이 갇혀 옷감도 상하고 냄새도 절대 빠지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인지했기 때문입니다.
베란다 창문을 양쪽으로 10cm 이상 넓게 열어 바깥바람이 옷감 사이사이를 통과하도록 옷걸이 간격을 넉넉하게 떨어뜨려 놓았습니다. 단, 햇빛이 직접 내리쬐는 곳에 두면 옷감의 색이 바랠 수 있어 직사광선이 들지 않는 그늘진 베란다 모퉁이를 택했습니다. 의류 드라이클리닝 후 석유 냄새 제거법은 대단한 화학 향수가 아니라 바람의 길을 터주는 자연스러운 통풍에 있었습니다.

베란다 건조대에 옷걸이 간격을 넓혀 걸어둔 코트와, 바람이 잘 통하도록 열어둔 베란다 창문의 모습


사흘 동안 바람을 맞혀주니 코를 찌르던 특유의 휘발성 냄새가 거짓말처럼 옅어졌습니다. 바람이 부족한 날에는 집에 있는 선풍기를 베란다 쪽으로 틀어 약한 바람을 한두 시간 정도 쐬어주었는데, 옷감 속 잔류 유해 물질이 빠져나가는 속도가 훨씬 빨라지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4. 코끝을 찌르던 석유취가 빠져나가고 비로소 되찾은 쾌적한 옷장

사흘간의 베란다 환기를 마치고 옷을 다시 안방 옷장에 넣었을 때, 더 이상 눈이 시리거나 머리가 묵직해지는 불쾌함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옷감 고유의 포근한 감촉만 단정하게 남아있었지요.
세탁소에서 찾아온 옷을 예쁘게 보관하고 싶은 마음에 비닐을 씌운 채 옷장에 바로 넣었던 사소한 습관이 우리 집 공기를 답답하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나이 들수록 내 몸에 닿는 옷의 청결함만큼이나, 그 옷이 품고 있는 공기의 결을 다듬어주는 일이 일상을 참 쾌적하게 만들어 준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세탁소에서 가져온 옷이 있다면, 비닐을 슬그머니 벗겨내고 베란다 창가 나지막한 바람 앞에 잠시 맡겨두는 것부터 시작해 보아도 참 좋겠습니다.